오랜 시간 금융 소비자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확정 금리'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은행 예금과 발행어음이 제공하던, 약정된 수익이라는 견고한 성벽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한 금융 상품의 세대교체를 넘어, 자산을 대하는 태도가 '수동적 방어'에서 '적극적 공생'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징후이기도 합니다.
종합투자계좌(IMA)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은행업의 오랜 헤게모니에 질문을 던집니다. 은행이 국공채나 담보대출 같은 보수적인 자산 뒤에 숨어 '예대마진'이라는 안전한 이익을 독식할 때, IMA는 '실적 배당'이라는 불확실성을 무기로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고객에게 "정해진 이자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대신, "성과가 나면 나누겠다"는 자본주의의 가장 원초적인 계약을 제안합니다. 기준수익률을 초과한 이익을 증권사와 고객이 일정 비율로 공유하는 이 구조는, 은행의 타성적인 '이자 놀이'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필연적으로 운용 자산의 성격을 바꿉니다. IMA의 포트폴리오는 은행의 그것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모험적입니다. 기업 인수합병(M&A), 벤처캐피털, 비상장 주식 등 기업의 성장통이 존재하는 곳에 자금을 투입합니다.
이는 마치 정해진 월급에 안주하던 '직장인'의 삶을 거부하고, 성과에 따라 막대한 보너스를 챙기려는 '전문직'의 야망과 닮아 있습니다. 리스크를 감내하는 대신 '예금 금리 + α'라는 초과 수익을 노리는 이 전략은, 저성장 시대에 자산 증식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매혹적인 대안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모든 혁신에는 그림자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IMA가 제시하는 '원금 보장'의 이면에는 치명적인 법적 공백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예금자보호법이라는 국가적 안전장치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IMA의 세계에서 국가(예금보험공사)는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증권사라는 사기업의 신용이 대체합니다.
이것이 바로 IMA가 가진 내부의 모순이자 위험입니다. 운용 손실이 발생하면 증권사가 자기 자본으로 이를 메워야 하는 구조, 즉 '독박'을 쓰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금융 당국은 이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자기자본 8조 원 이상'이라는 거대한 진입 장벽을 세웠습니다. 소위 '초대형 IB'만이 이 링 위에 오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는 "덩치 큰 자본은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다소 낙관적인 '대마불사'의 믿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결국 IMA는 투자자에게 실존적인 선택을 강요합니다. 법이 보호하는 울타리 안에서 쥐꼬리만한 확정 이자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거대 자본의 건전성을 믿고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는 모험에 동참할 것인가.
은행 예금이 제공하던 안락함은 사라졌고, 그 빈자리는 자본의 덩치를 믿어야 하는 불안한 신뢰 게임이 채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금융 시장의 새로운 풍경입니다.